<죽음 보다 무서운 절망>
무더운 여름 날씨가 시작되는 어제는 도심의 인생의 길목에서 생명과 사랑의 법을 쫓아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몇몇 친구는 그 들만의 징검다리 연휴를 맞아 산과 바다로 휴식을 떠난다는 소식도 날라오고, 간암으로 4번째 간이식 수술을 위하여 중국으로 떠났던 어떤 친구의 부음도 들립니다.
일년 전 서울대 암치료 중환자실에서 살아 나왔다며 퇴원 후 제일 먼저 만나보고 싶었노라며 달려와서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함께 보양식을 먹으며 생명의 환희를 맛보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인생의 허망함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덤으로 사는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빚진 자의 마음으로 창조주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기를 권면했지만 “난 장사꾼입니다” 라는 말과 함께 기업을 일으키기 위하여 인생의 유일한 목적인 돈을 쫓아 달려가며 받는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여 줄담배와 폭음으로 강철 같은 그 친구의 의지가 흔들림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절망 중에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가질 수만 있었다면 더불어 삶과 나눔을 알았다면 참된 평안과 기쁨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회한이 남는군요. 20 년 전 낙망과 좌절로 폭음하며 죽어가던 친구를 한 방에서 동거하며 일기장을 훔쳐보면서도 고통에서 건져내지 못한 죄책감이 생각납니다.
또 다른 친구는 폐암 말기로 수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몇 일전 골목길에서 폐지를 주우면서 살아가는 할머니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얼마나 힘드시면 “저승사자가 왜 날 안 물어가나... 컴컴한 지하골방에 살아서 찿지 못하시나??“ 하시던 말을 들려주었더니... 그건 삶에 대한 애착으로서 살려 달라는 아우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생의 소망 까지 끊어진 이 친구는 암 치료비로 7억 정도 나오는 보험을 가입하였지만 치료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고인이 된 친구는 수 백억의 재산이 있지만 죽음 앞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평생 모은 돈을 끌어안고 내 돈..내 돈 하며 몸부림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구습을 쫓아 오직 세상 것만 바라다 허망하게 사라지는 불쌍한 우리의 이웃입니다.
젊은 시절 방탕과 짝하며 함께 어울리던 친구가 목사가 되었다고 하니까 “너 사기 쳐서 돈 벌려구 목사 되었지?” 합니다. “어떤 멍청이가 이십여 년을 적자나는 사업하며 가짜 목사로 살겠니!!”하며 웃고 말았지요. 진정 목회가 어려울땐 참된 안식을 소망하며 그만 쉬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들과 다름은 땅의 것이 아닌 천국복음의 참소망이... 두려워하는 사망이 아닌 생명의 주인인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요.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나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15:55,56)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눅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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